대구예술발전소
2023 예술창작기반센터 라운드테이블
대구예술발전소는 지난 12월, 지속가능한 문화예술 생태계를 위해 예술가의 새로운 시도와 다양한 방식 및 문화예술 이슈에 대한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인 라운드테이블을 진행하였습니다.
3회차 주제인 <지역예술인와 레지던시>는 대구 레지던시 입주 경험이 있는 예술가 4분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 패널(참여 예술인) : 김상덕(시각예술가), 류은미(시각 및 설치예술가), 박지훈(시각예술가), 신명준(시각 및 설치예술가)
- 모더레이터(사회자 및 글 작성자) : 배주현 기자(매일신문)
올해 초 대구 첫 예술작가를 위한 레지던시 공간인 '가창 창작 스튜디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가창 창작스튜디오는 지난 2007년 대구에서 처음으로 조성된 레지던시 공간으로, 대구시가 폐교된 우록분교의 건물을 리모델링해 청년 예술가를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곳에서 매년 10명 이상의 작가가 입주해 작품 및 전시활동을 펼쳤으며 15년 넘는 동안 약 200명의 청년예술작가가 양성, 배출됐다.
스튜디오 폐쇄 소식에 지역 예술작가의 아쉬움의 목소리가 잇따랐다. 코로나19 팬더믹 전까지 매년 10명 정도의 입주작가 중 2, 3명은 동남아시아, 유럽 등 외국 작가이면서 외국 작가와 교류하는 등 큰 이점이 있었고, 공간이 도심 외곽에 있다는 장점도 뚜렷했다. 시내와 거리가 멀어 이동이 불편하다는 단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조용한 자연으로부터 받는 예술적 영감이 컸다는 것이다.
당시 가창 창작 스튜디오를 운영했던 대구문화예술진흥원은 대안 공간으로 대구예술발전소, 수창청춘맨숀 등을 적극 활용하기로 했지만, 예술가들은 레지던시 사업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수성구의 상동 예술촌, 북구의 청문당 등 기초자치단체에서도 도심 내 원룸을 매입하는 레지던시 사업에 적극 뛰어들고 있지만, 획일화된 공간과 프로그램 진행에 그치고 있다는 이유였다.
그로부터 1년의 시간이 다 다랐지만 지역의 예술작가를 위한 레지던시 사업은 오히려 죽어가고 있다. 도심 내 원룸을 매입하는 것도 더 이상 진척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대구시는 레지던시 사업의 예산을 줄이는 모양새다. ‘예산 부족’이 표면적 이유였지만 일각에서는 예술가들이 ‘레지던시’를 잘 활용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하지만 예술가들에게 레지던시는 필수적인 장소다. 특히 신인 작가의 경우 이곳에서 다른 작가와 소통을 하며 전시를 만드는 법을 배우기도하며 시민들도 가까이 예술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지역의 사라지는 레지던시 사업. 총 4명의 지역 작가를 만나 대구의 레지던시 사업 현황과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각각 김상덕(29) 작가, 류은미(31) 작가, 박지훈(30) 작가, 신명준(32) 작가다.
◆레지던시, 타 작가와 교류의 장
▶각자 레지던시 입주 경험과 활동분야를 알려달라
김상덕 = 2020년 영천창작스튜디오 13기, 2021년 가창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였다. 평면과 회화, 드로잉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박지훈 = 2022년 달천예술창작공간 2기 입주작가였다. 디지털페인팅과 2D애네미에션, 설치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류은미 = 2022년 가창창작스튜디오 22기 입주작가다. 대구를 베이스로 설치, 평면 등 다양한 매체로 작업하고 있다.
신명준 = 2022년 대구예술발전소 12기 입주 작가다. 영상과 설치미술 쪽에서 활동 중이다.
▶각자 레지던시를 이용하면서 느꼈던 가장 큰 장점들을 알려달라
김 = 작업 공간이 크다는 점. 가짜 레지던시도 많다. 쪽방 같은 곳에서 예술작가들 3~4명 몰아넣고 작업하라는 곳도 있다. 실제로 작업 공간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서 제작할 수 있는 작품이 천차만별이다. 작업 공간이 크다면 도전적인 실험을 해볼 수 있다. 들은 이야기지만 서울권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만든 작품은 크기가 작다고 한다. 월세가 비싸다보니 상대적으로 저렴한 작은 공간에서 작품 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에서 지방에 내려오는 작가들도 많다.
류 = 설치 미술을 하다보니까 야외 공용 작업장에 관심이 간다. 가창 창작 스튜디오는 오래됐기 때문에 시설과 장비 면에서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야외에서 자유롭게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설치 미술을 하는 작가로 도전 욕구가 있는데 개인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기엔 한계가 있다. 탁 트인 공간인 가창 창작 스튜디오에서는 편하게 마음껏 해볼 수 있으니 자율성이 보장됐던 것 같다.
신 = 예술발전소라서 할 수 있는 작업이 많았다. 평소에 못해봤던 작업이 많았는데 이곳에서는 할 수 있었다. 나도 설치 미술 작업을 하는데 개인 작업실에서는 작품이 완성됐을 때 어떤 느낌이 날까라고 느끼기에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예술 발전소에서는 설치를 해볼 수 있으니 이 작품이 구현됐을 때 어떤 느낌이 난다라는 감을 익힐 수 있었다. 머릿속에서 생각만하는 것과 실제로 구현됐을 때의 느낌 자체가 다르더라. 안정감 있게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박 = 달천창작스튜디오는 좋은 기자재를 보유할 수 있어서 영상 작업을 하는 내게는 큰 메리트였다. 또 이곳은 예술가들이 원하는 것에 대한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같은 맥락의 질문이지만 “아, 나 정말 레지던시 이용 잘했다”라고 생각한 순간들이 있었나
김= 다른 작가들과 만났을 때다. 한 공간에서 다른 장르의 작가들이랑 1년 동안 교류를 했던 게 가장 좋았다. 어떤 공간에서 소속감을 느끼면서 서로 피드백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 소속감이라는게 상당히 중요하더라. 나도 작업이 잘 안될 때가 많은데 다른 작가님도 작업이 잘 안되는 경우가 많더라. 그럴 때 ‘아~ 다 똑같구나, 비슷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오히려 힘이 더 났던 것 같다(웃음). 이 안정감이 좋았다.
신 = 예술가와 평론가 매칭이 가장 좋았다. 작업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한테 듣지 못했던 걸 들을 수 있게 되면서 한계점을 보완할 수 있었다. 혼자 작업을 했더라면 전혀 볼 수 없던 부분이었다. 전문가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귀한 경험이었다.
류 = 친한 사람이 아니면 작품을 오픈할 일이 잘 없는데 지인이 아니라 관계자분들, 또 다른 작가의 일반 지인이 이곳을 찾아 내 작품을 보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 가장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대화를 하면서 작품에 대한 기존 나의 고정 관념이 많이 사라지기도 했다.
박 = 평소 다른 작가와 교류를 안하는 편이었는데 레지던시에서 다른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나보니 다양한 정보를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역사성 깊은 예술공간 “살려야”
▶이야기를 들어보니 레지던시는 예술작가들에게 꼭 필요한 공간인 것 같다. 전국적으로 레지던시가 없어지는 추세라던데…해당 흐름을 어떻게 평가하나?
김 = 안타깝다. 특히나 어떠한 결과물에 더 무게를 두고 그것에 비해서 레지던시라는 공간이 전시 이외의 결과물을 내지 못한다고 쉽게 생각하는 점 등을 통해 레지던시가 필요없다고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작품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진행하는 과정들을 위한 장소로서 충분히 레지던시들은 그 가치를 내고 있다. 한편으로는 레지던시가 단순히 작품을 제작하고 하는 것, 결과전 등 전시 뿐만이 아닌 레지던시가 위치한 지역의 시민들에게도 레지던시라는 공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도록 주기적인 오픈스튜디오, 프로그램 진행 등을 통해 레지던시의 필요성을 계속 알려야 한다.
▶대구의 레지던시 운영 현황에 대해 평가를 해보자면?
류 = 매년 많은 미술작가들이 생기고 있지만 그들이 지원할 수 있는 레지던시 수는 턱없이 부족한데 심지어 가장 오래 운영되어왔던 레지던시는 최근 문을 닫게 됐다. 작가들에게 지원되는 사업 중 레지던시는 가장 집약적으로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이라 생각하기에 그 수가 좀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
박 = 레지던시를 이용하면서 ‘워크숍’이라든지 예술작가들에게 요구하는 프로그램들이 많은 경우도 있다. 온전히 작업에 몰두하고 싶은데 교류 프로그램에 나서야 하니 여기에 부담감을 느끼는 예술작가도 분명히 있다. 작가들이 생각하는 레지던시 공간 내의 작업과 해당 공간을 운영하는 기관이 생각하는 작업 사이 차이가 있다. 레지던시 입주 전에 이곳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과 진행해야하는 전시량에 대해 사전에 충분히 공지가 됐으면 좋겠다.
김 : 레지던시에서 하는 프로그램 진행이 단순 보여주기에 그친다는 느낌이 들었다. 관계자들이 와서 사진 찍고 결과보고 올리는 식이다. 그러다보니 전시회나 프로그램에 작가들의 참석률이 적었다. 위에서 내려오는 오더 형식이 아니라 프로그램에 대해 작가와의 의견 조율, 대화를 충분히 거친다면 작가들의 반발이 줄어들 것 같다.
▶가뜩이나 부족한 지역의 레지던시인데 지자체는 레지던시 공간에 대한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예술작가로 어떤 공간이 생겼으면 좋겠다하는 바람이 있을까?
류 = 레지던시마다 공간이 획일적인 느낌이 든다. 이런 상황에서 이 레지던지, 저 레지던시를 경함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특색이 다르고 위치도 다른 나름의 개성이 있는 공간에서 작업을 할 때마다 결과물이 나르다. 도심에서 레지던시가 획일적으로 생겨버려서 아쉽다. 물론 공간이 많이 생기는 것은 좋지만 앞으로 레지던시라는 게 생겼다가 없어졌다를 반복할텐데…가창 창작 스튜디오처럼 공간이 가지고 있는 힘이나 역사성을 대구시가 좀 더 바라봐줬으면 좋겠다. 그동안 이곳을 거쳐간 작가님들이 전국적으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들이 구축해둔 역사적인 의미성이 계속 상실되는 것 같다.
신 = 다른 지역의 경우 레지던시가 폐교를 이용해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고 미술관마다 레지던시가 있는 경우도 있더라. 서울 쪽에는 시립 미술관 레지던시가 있거나 갤러리 안에 레지던시가 있는데 그런 점이 좋게 보였다. 대구 같은 경우에는 미술관을 끼고 있는 레지던시가 없어서 아쉽다. 대구 시립 미술관 내에 레지던시가 하나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렇게되면 대구시나, 시민들이나 레지던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전시회장 바로 옆에 작품 활동을 하는 공간이 생기면 힘이 더 실릴 것 같다. 앞으로 간송 미술관도 생기니 이 부분에 대해 고려를 해봤으면 좋겠다.
혹은 레지던시는 어쨌든 공간 확보가 돼야 하기 때문에 공간이 생긴다면 외곽으로밖에 갈 수 없는데 도심 내 여러 공간을 임대해서 게릴라 식으로 레지던시를 여러군데 만들어두면 어떨까. 공간 확보 측면에서는 이 역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박 = 아예 작가들에게 레지던시를 아주 저렴한 월세로 대여해주는 방안으로 가면 어떨까? 이미 여러 작가 중 레지던시에 입주해놓고 아예 이곳을 창고로 쓴다든지 책임감 없는 분들이 여럿있다. 예술작가의 책임성을 기르기 위해서 레지던시를 무상 대여하는 것보다는 일정부분 돈을 내고 사용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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